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바논-팔레스타인 관계 (문단 편집) === 중세 === 아랍 무슬림들의 군대가 동로마 제국 동부 영토를 정복하면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일대는 [[이슬람 제국]]의 영토가 된다. [[정통 칼리파 시대]] 이후 이슬람 제국을 차지한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가문]]은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에 해당하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고, [[예루살렘]]을 별장 삼아서 거처하길 좋아했는데 여기에는 우마이야 가문이 헬레니즘 문화 애호가라는 점이 적잖이 작용하였다. 예루살렘이 아랍 무슬림 군대에게 정복당할 당시 이슬람 제국의 지도자였던 제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는 현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의 권리를 보장하였고, 이렇게 권리를 보장받은 팔레스티나 일대의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고대 로마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 유산 관련 지식과 문화를 적잖이 보존하고 있던 상태였다. 우마이야 칼리파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세속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과도 같았다. 이슬람 제국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 일대를 정복할 당시 시리아의 야코부스파 기독교인들은 동로마 제국 중앙의 칼케돈파 기독교인들과 서로 이단으로 정죄하며 갈등하던 상황이었고, 아랍 무슬림들의 정복을 적어도 초반에는 환영하던 입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레바논 북부의 산악지대는 교통이 불편하였고 지리적으로도 다소 협소하여 아랍 무슬림들 관심 밖에 있었다. 이 지역에는 '왕당파'라는 이름의 말카파 기독교인들이 주로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합성론]]을 믿는 여타 레반트 지역 기독교인들과 갈등 끝에 레바논 산악지대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한 이후 [[아바스 왕조|압바스 칼리프조]] 그리고 [[파티마 왕조]]가 대립하던 시대가 되면 이집트 방향에서 [[드루즈교]]라 하여 일군의 소수종파 신도들이 다시 레바논 산악지대 일대로 피신해 자리를 잡는데 이 과정에서 레바논의 종교 지형은 팔레스타인 지역 못지 않게 복잡해졌다. 동로마 제국 중흥기 시절 [[요한네스 치미스케스]]가 지휘하는 동로마 제국 군대가 [[아바스 왕조]]의 군벌 정권이던 [[함단 왕조]]를 격파하고 레바논 북부 일대로 남하하였던 바 있었는데, 동로마 제국 군대는 아직 기독교인 인구가 많이 잔류하던 레바논 북부 일대까지는 성공적으로 접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무슬림 인구가 많은 레바논 남부 지역 밑으로의 남하는 시도하지 못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무슬림 신민들을 다스리는 노하우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크레타 섬처럼 무슬림 인구가 소수인 지역을 정복하면 무슬림 주민들을 전부 다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강제개종시키는 편이었다. 그러나 대륙에서 이런 정책을 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레바논 산악지대 주민들의 삶은 근교에 위치한 성지 예루살렘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와 위협을 겪었다. 예루살렘이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들의 목표가 되면서 십자군들이 레바논을 거쳐 팔레스타인 방향으로 진군하였던 것이다. 전쟁 초창기 당시 십자군들은 레바논 주민들을 다 같은 무슬림인 줄 알고 학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이후 현지 상황을 파악하게 된 이후에는 드루즈교나 알라위파 신도들 그리고 말카 기독교인들을 신민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보조부대로 고용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 지역에서 현지인들이 십자군들에게 반감을 보였던 것과 다르게 레바논 산악지대 주민들이나 혹은 중동으로 이민 온 아르메니아인들은 십자군들에게 호의적이었고, 이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십자군 국가들이 레반트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맘루크 왕조]]에 의해 십자군 국가들이 차례로 멸망하고 십자군들이 중동에서 모두 축출될 당시 맘루크들은 십자군의 조력자였던 알라위파들을 완전히 무릎꿇렸으나 레바논 북부 산악지대의 드루즈교도들이나 기독교인들까지 완전히 제압하는 데까지는 힘을 쓰지 못했다.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들을 제압한 이후 [[몽골 제국]]의 후신 [[일 칸국]]과 한동안 계속 전쟁을 치루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맘루크들은 자신들이 몽골군과 싸우는 동안 후방에서 십자군들이 다시 침공할 것을 우려하여 레바논의 항구도시들을 황폐화된 상태로 방치하였고, 이러한 지역들은 근세 오스만 제국 시대 들어서야 다시금 개발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